[화담일보=이가은기자] 새벽배송 기사의 야간 노동을 '주 48시간·월 12회'로 묶는 법안이 국회에 나왔다. 발의 두 달여 만에 쟁점은 숫자에서 비용으로 옮겨갔다. 법안대로라면 줄어들 야간 노동만큼의 배송을 누가 맡을지가 문제다. 그 비용을 누가 낼지도 아직 답이 없다.

박홍배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8월 관련 개정안 2건을 대표 발의했다. 산업안전보건법과 생활물류서비스산업발전법 개정안이다. 개정안은 자정~오전 5시를 낀 연속 7시간 이상의 일을 '야간작업'으로 본다. 야간작업은 하루 10시간, 주 48시간을 넘을 수 없다. 작업 뒤에는 최소 11시간을 연달아 쉬어야 한다. 연속 야간작업은 3일, 한 달 야간작업은 12회까지다.
■ ‘0~5시 금지'에서 '총량 제한'으로
논쟁은 1년 전 시작됐다. 민주노총 전국택배노동조합은 지난해 10월 0~5시 심야배송 제한을 제안했다. 이커머스 업계는 "불가능한 주장"이라며 반발했다. 노조는 새벽배송 전면 금지 요구는 아니라고 밝혔다.
이후 논의는 시간대 대신 노동시간 총량을 묶는 쪽으로 옮겨갔다. 택배 사회적 대화기구는 올해 1월 큰 틀의 원칙에 합의했다. 야간배송 기사의 주간 노동시간 상한을 46~50시간 사이에서 정한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4월 회의에서 구체적인 숫자를 정하지 못했다. 노동계는 주 48시간안에 동의했다. 쿠팡과 컬리는 50시간 아래로는 어렵다는 입장이었다.
대화기구는 5월 몇 가지 쟁점에 잠정 합의했다. 야간 기사 주 5일제, 분류작업 배제, 건강진단 의무화 등이다. 노동시간 상한은 입법 과제로 넘어갔다. 박 의원 법안의 48시간은 46시간안과 50시간 요구 사이의 숫자다.
■ 규제 방식에 따라 '병목'이 달라진다
운영관리 관점에서 새벽배송은 마감시간이 정해진 연속 공정이다. 상품은 밤사이 거점 물류센터로 옮겨져 분류된다. 업계는 이렇게 분류한 상품을 오전 7시 전 소비자에게 배송한다고 설명한다. 외곽 센터에서 일을 마치려면 자정 전부터 움직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구조에서 규제는 병목의 위치를 바꾼다. 병목은 일이 몰려 전체 속도를 정하는 지점이다. 규제 방식에 따라 병목이 생기는 자리도 달라진다.
0~5시 금지처럼 시간대를 막으면 병목은 '시간'에 생긴다. 배송 가능한 시간창이 좁아진다. 같은 물량을 더 짧은 시간에 처리해야 한다. 업계는 운송 지연과 물량 적체, 비용 증가가 함께 생긴다고 우려했다. 반면 노조는 이 제안이 새벽배송을 없애자는 뜻은 아니라는 입장이었다.
주 48시간·월 12회처럼 총량을 묶으면 병목은 '사람'으로 옮겨간다. 시간창은 그대로지만 한 사람이 맡을 수 있는 밤이 줄어든다. 지금은 한 사람이 주 5일가량 새벽배송을 전담하는 구조다. 이는 한 달에 21~22일 밤에 일하는 셈이다. 1인이 하룻밤에 맡는 물량이 같다고 가정해 단순 계산했다. 월 12회로 줄이면 같은 물량에 약 1.8배의 인원이 든다.
이 변화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법안 측은 야간노동을 여러 사람이 나눠 맡는 구조로 바꾸는 것이 취지라고 본다. 업계는 인력 확보와 비용 부담을 우려한다. 실제 규모는 물량 변동과 근무 형태에 따라 달라진다.
■ 건강권 대 소득…남은 쟁점은 '비용'
법안을 낸 쪽은 야간노동을 산업안전 문제로 본다. 박 의원은 고정 야간노동이 비만, 심혈관 질환, 수면장애 위험을 키운다고 말했다.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도 지난해 12월 같은 취지로 말했다. 심야노동은 세계보건기구(WHO)가 2급 발암요인으로 분류한 사안이라는 것이다. 2024년 5월 심야배송 중 숨져 산재를 인정받은 쿠팡 기사도 있다. 그는 사망 전 12주간 주 평균 73시간 넘게 일한 것으로 조사됐다.
쿠팡 위탁 기사 단체와 업계는 소득 감소를 걱정한다. 쿠팡파트너스연합회(CPA)는 쿠팡 위탁 택배 대리점 단체다. CPA는 법안 발의 직후인 8월 말 소속 기사 3319명에게 설문했다. 월 최대 12일 제한에는 약 98%가 반대했다. 소득이 줄면 다른 일을 병행하거나 택배 일을 떠나겠다는 응답도 나왔다. 다른 업체에서 야간 일을 이어가면 실제 피로는 줄지 않을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박 의원은 법안 수치가 절대 바꿀 수 없는 숫자는 아니라며 현장 의견을 듣겠다고 밝혔다.
결국 남는 질문은 비용이다. 한국교통연구원은 주 46·48·50시간 상한별 추가 비용을 산출해 왔다. 사회적 대화기구는 이를 바탕으로 비용 분담을 다루는 2단계 논의에 들어간다. 택배요금 인상과 '백마진' 구조 개선 등이 거론된다. 백마진은 택배요금이 택배사에 온전히 전달되지 않는 구조를 말한다.
요구는 양쪽에서 이어지고 있다. 택배노조는 지난달 18일 서울 도심 집회에서 '수입 감소 없는 주 5일제'를 요구했다. CPA는 근무 횟수 제한이 기사의 생계를 위협한다며 법안에 반대하고 있다. 법안은 국회 상임위원회 심사를 앞두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