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나눔] 용서하지 못하는 신앙은 그리스도의 향기를 잃는다

고린도후서 1장 23절~2장 17절

용서하지 못하는 신앙은 그리스도의 향기를 잃는다

 

 

 

사람은 누구나 관계 속에서 상처를 주고받는다. 때로는 사랑한다는 이유로 상대를 책망하고, 옳다는 확신으로 타인을 몰아세운다. 그러나 우리가 옳다고 믿는 말이 언제나 상대를 살리는 것은 아니다. 진실을 말하는 것과 사람을 회복시키는 것은 반드시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다.

 

고린도후서 1장 23절부터 2장 17절은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와 겪었던 갈등을 배경으로 한다. 바울은 방문 계획을 변경하면서 오해와 비판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결정을 변호하는 데 머물지 않고, 공동체를 향한 사랑과 회복의 원칙을 설명한다.

 

바울은 이렇게 고백한다.

 

“우리가 너희 믿음을 주관하려는 것이 아니요 오직 너희 기쁨을 돕는 자가 되려 함이니”(고후 1:24)

 

이 말씀은 오늘날 교회와 사회의 지도자들에게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누군가의 믿음과 삶을 지배하려 하는가, 아니면 그가 스스로 바로 설 수 있도록 돕고 있는가?

 

신앙의 지도력은 사람을 통제하는 능력이 아니라 타인의 성장을 돕는 책임이다. 신앙의 이름으로 질문을 금지하고, 순종이라는 명분으로 비판을 억압한다면 그것은 바울이 말한 지도력과 거리가 멀다.

 

참된 영적 권위는 사람을 자기에게 종속시키지 않는다. 오히려 하나님 앞에서 자유롭고 책임 있는 존재로 세운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편지를 썼던 마음을 이렇게 밝힌다.

 

“내가 마음에 큰 눌림과 걱정이 있어 많은 눈물로 너희에게 썼노니”(고후 2:4)

 

그의 책망은 분노를 쏟아내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자신의 권위를 증명하려는 행동도 아니었다. 공동체를 향한 깊은 사랑에서 비롯된 고통스러운 선택이었다.

 

여기서 우리는 사랑과 책망의 관계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사랑은 언제나 부드러운 말만 하는 것이 아니다. 잘못을 외면하는 태도 역시 사랑이라고 할 수 없다. 그러나 책망이 정당하려면 그 목적이 상대의 굴복이 아니라 회복이어야 한다.

 

오늘날 우리는 타인의 잘못을 쉽게 공개하고 비난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 온라인에서는 한 사람의 실수가 순식간에 수많은 사람의 공격 대상이 된다. 잘못을 바로잡는 일보다 잘못한 사람을 무너뜨리는 일이 더 큰 관심을 얻기도 한다.

 

교회도 이러한 문화에서 자유롭지 않다. 죄를 지적하는 데는 열심이지만, 회개한 사람을 다시 공동체 안으로 받아들이는 일에는 인색할 수 있다.

 

그러나 바울은 책망 이후의 책임까지 묻는다.

 

잘못을 지적했다면, 그 사람이 다시 일어설 길도 마련해야 한다. 진실을 말하는 용기만큼이나 회복을 기다리는 인내가 필요하다.

 

고린도후서 2장 6~8절에서 바울은 공동체의 징계를 받은 사람에 대해 말한다. 그 사람의 구체적인 잘못이 무엇인지는 본문만으로 확정하기 어렵다. 중요한 것은 바울이 이제 그를 용서하고 위로하라고 권면한다는 사실이다.

 

“그런즉 너희는 차라리 그를 용서하고 위로할 것이니”(고후 2:7)

 

바울은 그 사람이 지나친 근심에 빠질 것을 염려한다. 공동체의 징계가 잘못을 깨닫게 하는 수준을 넘어 한 인간을 절망으로 몰아넣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기독교 윤리의 중요한 원칙이 담겨 있다.

 

죄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것과 죄인을 영원히 배제하는 것은 다르다.

 

용서는 잘못을 정당화하거나 피해자의 고통을 지우는 행위가 아니다. 진정한 용서는 책임을 인정하는 과정과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특히 폭력과 학대의 상황에서는 피해자의 안전과 정의가 우선되어야 하며, 용서를 이유로 화해를 강요해서는 안 된다.

 

바울의 권면은 잘못한 사람에게 아무런 책임도 묻지 말라는 뜻이 아니다. 징계의 목적이 달성된 이후에도 계속해서 정죄하는 태도를 경계하는 것이다.

 

우리는 종종 정의를 말하면서 자비를 잃어버린다. 반대로 사랑을 말하면서 책임을 회피하기도 한다.

 

그러나 복음은 정의와 사랑을 서로 적대적인 가치로 만들지 않는다. 잘못을 바로잡되 인간의 존엄을 포기하지 않는 것, 그것이 회복을 향한 공동체의 책임이다.

 

바울은 이어서 자신을 비롯한 복음의 사역자들을 그리스도의 향기를 나타내는 사람으로 묘사한다.

 

“우리는 구원 받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고후 2:15)

 

향기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주변에 퍼진다. 사람의 말과 행동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어떤 태도로 살아가는지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미친다.

 

그렇다면 오늘날 그리스도인의 삶에서는 어떤 향기가 풍기고 있는가?

 

사랑을 말하면서 타인을 멸시하지는 않는가. 용서를 설교하면서 오래된 원한을 붙잡고 있지는 않는가. 진리를 주장하면서 다른 사람의 고통에는 무관심하지 않은가.

 

바울이 말한 향기는 단순히 사람들에게 좋은 인상을 주는 친절함만을 뜻하지 않는다. 복음에 대한 반응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하지 않는 것이다.

 

바울은 본문 마지막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장사하듯 이용하는 태도를 경계한다(고후 2:17).

 

이는 오늘날 종교가 권력과 명예, 경제적 이익을 추구하는 수단으로 변질될 위험을 돌아보게 한다.

 

복음은 팔아야 할 상품이 아니며, 사람은 종교적 성공을 위한 도구가 아니다.

 

그리스도의 향기는 화려한 종교적 언어보다 진실한 삶에서 드러난다. 권력을 내려놓는 겸손, 상처받은 사람을 돌보는 책임, 잘못을 인정하는 용기, 회개한 사람에게 다시 기회를 주는 사랑이 그 향기를 증언한다.

 

고린도후서의 바울은 완벽한 관계를 보여 주지 않는다. 오히려 오해와 갈등, 눈물과 책망 속에서도 관계를 포기하지 않는 신앙의 모습을 보여 준다.

 

그는 사람을 지배하기보다 기쁨을 돕고, 책망하되 사랑을 잃지 않으며, 징계하되 회복의 가능성을 닫지 않는다.

 

오늘 우리의 신앙도 이러한 질문 앞에 서야 한다.

 

나는 옳다는 이유로 누군가를 아프게 하고 있지는 않은가? 누군가의 잘못을 기억하는 데는 능숙하면서 그가 변화한 모습은 외면하고 있지 않은가?

 

믿음의 성숙은 얼마나 많은 성경 지식을 가졌는가만으로 판단할 수 없다. 그 지식이 사람을 살리는 사랑으로 나타나는가에 달려 있다.

 

그리스도의 향기는 상대를 정죄하는 입술보다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손을 내미는 삶에서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

 

오늘 우리가 남겨야 할 것은 승리한 논쟁의 흔적이 아니라, 한 사람을 다시 살아가게 한 사랑의 향기다.

 

삶을 바꾸는 동화 신문 기자 kjh0788@naver.com
작성 2026.11.03 08:35 수정 2026.11.03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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