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Physical AI(피지컬 AI·물리적 인공지능)가 연구실과 산업 현장을 넘어 도시 공공서비스 영역으로 활동 무대를 넓히고 있다. 2026년 11월 1일 저장성(浙江省) 항저우(杭州)에서 열린 항저우 마라톤에 윈선추커지(云深处科技)의 이족 보행 휴머노이드 로봇 ‘항싱 얼하오(杭行二号)’가 교통안전 지원 인력으로 투입됐다. 교차로 순찰과 교통법규 위반 계도, 시민 안내 등을 맡은 이번 사례는 인공지능이 디지털 공간의 정보 처리에서 벗어나 실제 세계에서 인식하고 판단하며 행동하는 단계로 나아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2026년 11월 1일 중국 저장성 항저우에서 열린 항저우 마라톤 현장에 새로운 형태의 교통안전 지원 인력이 등장했다. 중국 로봇기업 윈선추커지와 항저우시 교통경찰 당국이 협력해 개발·운영한 이족 보행 로봇 항싱 얼하오다. 중국신문망(中新网)은 이날 보도에서 항싱 얼하오가 황룽체육센터(黄龙体育中心) 주변 4개 주요 지점에 배치돼 교차로 근무, 자율 순찰, 교통법규 위반 계도, 시민 문의 응대 등을 수행했다고 전했다.

이번 항저우 마라톤에는 30만 명이 넘는 신청자가 몰렸으며, 실제 참가 선수는 3만6,000명에 달했다. 경기장 주변에는 선수와 관람객이 한꺼번에 모이고, 경기 진행에 따라 보행자와 차량의 이동 흐름도 계속 달라진다. 이처럼 짧은 시간에 인파가 집중되는 환경은 교통안전 인력과 장비의 신속한 대응이 필요한 현장이다.
중국신문망에 따르면 항저우시 당국은 반복적인 현장 근무를 지능형 장비가 분담하도록 하고, 경찰관은 돌발 상황과 주요 지점의 통제에 집중하는 인간·로봇 협업 체계를 추진했다. 이는 로봇을 단순히 전시하거나 관람객에게 보여주는 차원이 아니다. 실제 교통안전 업무의 일부를 맡겨 현장 운영에 활용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178cm 휴머노이드에 탑재된 센서와 연산 능력
항싱 얼하오는 윈선추커지가 개발한 DR02 이족 보행 휴머노이드 플랫폼을 기반으로 한다. 글로벌타임스(Global Times)는 이 로봇의 신장이 178cm이며, IP66 방수·방진 등급과 영하 20도에서 영상 55도까지의 작동 온도를 갖췄다고 보도했다. 라이다(LiDAR), 심도 카메라, 광각 카메라를 결합한 다중 센서 시스템도 탑재했다. 연산 능력은 275 TOPS로 소개됐다.
이러한 사양은 실내에서 정해진 동작을 반복하는 로봇과 다른 요구조건을 보여준다. 도로와 교차로는 보행자, 차량, 장애물의 위치가 계속 바뀌는 공간이다. 조명과 날씨도 일정하지 않다. 로봇이 실제 업무를 수행하려면 주변 환경을 인식하고, 이동 경로를 조정하며, 상황에 맞는 동작을 실행해야 한다.
항싱 얼하오는 사전 설정한 경로를 따라 교차로 주변을 순찰하고 여러 근무 지점 사이를 이동한다. 고정형 감시 장비가 포착하기 어려운 구역을 이동하면서 확인하는 역할도 맡았다. 교통법규 위반 계도 기능도 눈여겨볼 부분이다. 로봇은 보행자의 무단 횡단이나 차량의 무리한 진입 등을 감지하고, 표준화된 교통 수신호와 음성 안내를 제공한다. 시민에게 경기장 주변 교통정보와 이동 경로를 안내하는 음성 기반 질의응답 기능도 수행한다.
다만 이러한 기능을 곧바로 경찰관의 판단과 단속 권한을 대체하는 수준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현재 공개된 업무는 감지와 안내, 순찰, 계도 등 경찰관을 지원하는 기능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Physical AI의 핵심은 인공지능과 물리적 행동의 결합
이번 사례를 이해하려면 Physical AI의 개념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기존의 생성형 AI가 주로 텍스트와 이미지, 음성 등 디지털 정보를 처리했다면 Physical AI는 인공지능이 실제 물리적 환경과 상호작용하도록 만드는 기술 영역이다. 로봇은 카메라와 센서로 주변 상황을 인식하고, AI와 연산 장치를 통해 정보를 처리하며, 모터와 제어 시스템을 이용해 실제 움직임으로 연결한다. 이 과정에는 환경 인식, 공간 이해, 동작 계획, 균형 제어, 장애물 회피, 상황별 대응이 함께 작동한다.
중국에서 사용하는 ‘쥐선즈넝(具身智能)’이라는 표현도 이러한 흐름을 설명한다. 우리말로는 체화 지능 또는 체현 지능으로 번역할 수 있다. 지능이 물리적 신체와 결합해 현실 공간에서 행동한다는 의미다. 항싱 얼하오의 사례가 주목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단순히 음성으로 질문에 답하거나 화면에 정보를 표시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주변 교통 상황을 감지하고, 실제 도로 위에서 이동하며, 정해진 업무를 수행한다.
이는 인공지능의 성능을 언어모델의 응답 정확도만으로 평가하기 어려워졌다는 뜻이기도 하다. 물리적 환경에서 얼마나 정확하게 인식하고, 안정적으로 움직이며, 주어진 임무를 지속적으로 수행하는지가 새로운 평가 기준으로 부상하고 있다.
항저우의 로봇 교통안전 지원은 이번이 처음 등장한 시도는 아니다. 인민일보 영문판 계열인 피플스데일리(People's Daily)는 2026년 5월 1일 항저우 시후(西湖) 관광지와 주요 도로에 지능형 교통관리 로봇 15기가 정식 배치됐다고 보도했다. 이들 로봇은 보행자와 비자동차 이용자의 교통질서 안내, 교통관리 지원, 관광객 길 안내 등을 담당했다.
다만 5월에 배치된 교통관리 로봇과 11월 항저우 마라톤에 투입된 이족 보행 휴머노이드는 구분해서 볼 필요가 있다. 두 사례는 모두 공공 교통관리 분야에서 로봇을 활용했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이번 항싱 얼하오는 이족 보행 플랫폼을 기반으로 한다.
한편 2026년 4월 19일 베이징 이좡(北京亦庄)에서는 인간 선수와 휴머노이드 로봇이 함께 참여하는 하프마라톤이 열렸다. 중국중앙TV(CCTV) 보도에 따르면 이 대회에서는 원격조종 방식과 자율주행 방식의 로봇이 경쟁했다. 베이징 대회가 로봇의 주행 능력과 운동 성능을 시험하는 무대였다면, 항저우 마라톤은 휴머노이드 로봇이 실제 공공업무를 지원하는 현장에 초점을 맞췄다는 차이가 있다.

중국 로봇 산업은 경기장에서의 운동 능력 검증과 도시 현장에서의 업무 수행이라는 서로 다른 방향에서 실증 범위를 넓히고 있다.
이번 사례에서 더 중요하게 살펴볼 부분은 인간과 로봇의 역할 분담이다. 대규모 마라톤 현장에는 반복적인 순찰과 안내뿐 아니라 돌발 사고, 응급환자 발생, 군중 간 충돌, 교통 흐름의 급격한 변화 등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로봇은 사전에 정해진 경로를 순찰하고,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교통안전 안내를 수행하는 데 활용할 수 있다. 반면 현장 경찰관은 상황의 맥락을 판단하고, 예외적인 사건에 대응하며, 시민의 안전을 위한 최종 의사결정을 맡는다.
이러한 업무 분담이 안정적으로 작동한다면 공공기관은 제한된 인력을 보다 복잡하고 전문적인 업무에 집중시킬 수 있다. 물론 실제 효과는 장기간의 운영 결과로 확인해야 한다. 로봇의 오인식률, 보행자와 차량의 갑작스러운 움직임에 대한 대응 능력, 배터리 지속시간, 통신 장애 발생 시 대처, 유지관리 비용, 개인정보 보호 등 해결해야 할 과제도 적지 않다.
특히 교통안전은 시민의 생명과 직결되는 영역이다. 로봇의 판단이 잘못됐을 때 누가 책임지는지, 인간 경찰관이 언제 개입하는지,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을 때 어떻게 대응하는지에 관한 운영 기준도 필요하다.
중국 Physical AI 경쟁, 이제는 현장 적용 능력이 관건
중국의 로봇 산업을 바라볼 때 하드웨어의 외형이나 보행 기술만 비교해서는 산업의 발전 방향을 제대로 이해하기 어렵다. 휴머노이드 로봇이 사람과 비슷한 형태로 걷는 것은 기술적 성과의 일부다. 실제 산업적 가치는 그 로봇이 얼마나 오랫동안 안정적으로 작동하고, 어떤 환경에서 임무를 수행하며, 기존 업무체계에 얼마나 자연스럽게 연결되는지에 달려 있다.
항저우 마라톤의 항싱 얼하오는 이러한 변화의 한 사례다. 로봇이 교통안전 업무의 일부를 맡고, 경찰관과 함께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는 방식이 현실의 운영 현장에 등장했다. 앞으로 중국 Physical AI 산업의 경쟁력은 로봇의 성능을 넘어 실제 업무를 수행하는 능력, 운영 비용, 안전성, 시스템 통합 능력에서 판가름 날 가능성이 크다.
한국 역시 휴머노이드 로봇의 관절과 모터, 감속기, 센서, AI 모델 등 개별 기술의 경쟁력 확보와 함께 실제 로봇을 투입할 수 있는 산업·공공 실증 환경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기술 개발과 현장 적용, 안전기준 마련, 운영 경험 축적이 함께 진행돼야 한다.
항저우 마라톤에서 교통안전 업무를 지원한 휴머노이드 로봇은 미래 도시의 모습을 완성한 기술이라기보다 그 방향을 보여주는 실증 사례에 가깝다.
인공지능이 화면 속에서 답하는 시대를 지나 현실 공간에서 보고, 움직이고, 일하는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Physical AI 경쟁의 다음 단계는 누가 더 인간처럼 걷느냐가 아니라 누가 더 안전하고 지속적으로 실제 업무를 수행하느냐에 달려 있다.
윤교원 대표 / The K Media & Commerce, kyoweon@naver.com
[이 기사의 저작권은 이비즈타임즈에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