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초등학교 시절 6학년 담임선생님이 단종 임금님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어린 마음에 가슴이 아팠다. '자라 어른이 되면 단종 무덤에 꼭 가 봐야지...'라는 생각을 품고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중학교 2학년 친구가 '여고시대'란 잡지를 가져왔다. 읽을거리가 부족했던 나는 그 책을 교과서 아래에 숨겨 두고 하루 종일 읽었다. 맨 마지막 페이지 펜팔난에 '강원도 영월군 북면 마차 육리 삼반 원용진...'이 우연히 눈에 들어왔다.
'영월 사람을 알게 되면 단종 무덤에 가는 길이 쉽지 않을까...' 무지했던 나는 겁도 없이 편지를 보냈다. 엽서나 편지가 한 달에 두 어 번 오고 가길 십 년을 이어갔다. 나이가 드니 주변에서 선을 보라고 권했다. 하지만 십 년 속내를 주고받은 사람이 있었으니 마음이 홀가분하지는 않았다.
스물네 살이 되던 해 어느 날 이었다.
"우리가 얼굴은 한 번 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강남 고속버스터미널, 부산에서 출발하는 첫 차 맨 마지막에 내리면서 손에 샘터를 들고 있겠습니다."
그는 간첩이 접선하듯 암호를 보냈다. 그 만남 이후 한 달에 한 번쯤 서울에서, 부산에서, 영주에서, 제천에서 만났고 자연스럽게 부부가 되었다.
신혼여행을 갔다 온 뒤 중매를 선 단종 임금님이 계신 장릉으로 인사를 갔다. 그리고 강원도 정선에 살 때도 단종 임금님께 인사를 갔었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단종 임금께 한 번 더 인사를 갔었다. 근래에 ‘왕과 사는 남자’라는 영화가 히트쳐 올해 오월에 다시 찾아갔다.
중매쟁이에게는 양복 한 벌을 해주는 게 우리네 인심인데 내 중매를 서 주신 단종 임금께 영 미안하고 아쉬운 마음이 아직도 남아 있다.
[서재심]
남해군문화관광해설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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