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창작동화 | 아무도 오지 않는 의자
1. 기다리는 의자
마을 끝에는 작은 공원이 하나 있었다.
공원에는 나무 열두 그루와 분수 하나, 그리고 일곱 개의 의자가 있었다.
여섯 개의 의자는 햇볕이 잘 드는 산책길에 나란히 놓여 있었다. 아침이면 운동을 마친 사람들이 앉았고, 점심이면 도시락을 먹는 사람들이 찾아왔다. 저녁에는 연인들이 어깨를 기대고 앉았다.
하지만 일곱 번째 의자는 달랐다.
공원에서 가장 오래된 느티나무 아래, 햇볕이 잘 들지 않는 구석에 놓여 있었다. 등받이는 비뚤어졌고, 나무판 사이에는 오래된 빗물이 남긴 검은 얼룩이 있었다.
사람들은 그 의자를 지나칠 때마다 말했다.
"저 의자는 이제 버려야겠어."
"앉았다가 옷만 더러워지겠네."
"새 의자로 바꾸면 좋을 텐데."
의자는 그 말을 모두 들었다.
처음에는 서운했다.
자신도 한때는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의자였기 때문이다.
젊은 어머니가 아이에게 그림책을 읽어 주던 날도 있었다. 지팡이를 짚은 노인이 앉아 지나가는 구름의 모양을 세던 날도 있었다. 어떤 청년은 의자에 앉아 오래도록 울다가 눈물을 닦고 일어섰다.
의자는 그들의 이름을 몰랐다.
어디서 왔는지도, 어디로 가는지도 몰랐다.
다만 그들이 잠시 자신의 몸에 무게를 맡겼다는 사실만 기억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은 오지 않았다.
의자는 매일 아침 발소리를 기다렸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소리를 발소리로 착각한 적도 있었다.
멀리서 아이들이 뛰어오면 혹시 자신에게 오는 것은 아닐까 기대했다.
하지만 아이들은 언제나 다른 의자로 달려갔다.
그렇게 봄이 지나고 여름이 지나갔다.
어느 날 의자는 느티나무에게 물었다.
"나무야, 아무도 나를 찾지 않으면 나는 무엇을 위해 여기 있는 걸까?"
느티나무는 한동안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다 잎 하나를 떨어뜨리며 말했다.
"나는 네가 의자인 줄 알았는데, 너는 누군가의 기다림이었구나."
의자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었다.
2. 아무도 부르지 않는 아이
가을비가 내리던 날이었다.
학교가 끝날 시간이 지났는데도 공원에는 아이들이 보이지 않았다.
그때 작은 발소리가 들렸다.
한 아이가 공원으로 들어왔다.
아이는 우산이 없었다.
젖은 머리카락이 이마에 붙어 있었고, 운동화에서는 걸을 때마다 물이 찰박거렸다.
아이는 여섯 개의 의자를 지나쳤다.
그리고 가장 구석에 있는 낡은 의자 앞에 멈춰 섰다.
의자는 깜짝 놀랐다.
'설마 나에게 앉으려는 걸까?'
아이는 손바닥으로 의자 위의 빗물을 쓸어냈다.
그러고는 천천히 앉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의자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비가 그치자 아이는 일어났다.
"고마워."
그것이 전부였다.
다음 날에도 아이는 찾아왔다.
그다음 날에도, 그다음 날에도.
아이는 늘 혼자였다.
가끔 공원 입구를 지나가는 다른 아이들이 그 아이를 발견하고 수군거렸다.
"쟤 또 혼자 있네."
"같이 놀 친구도 없나 봐."
어떤 아이는 일부러 큰 소리로 말했다.
"저 의자랑 친구인가 봐!"
아이들은 웃으며 달려갔다.
낡은 의자는 아이의 등이 조금 더 둥글어지는 것을 느꼈다.
그날 아이는 오래 앉아 있었다.
해가 느티나무 뒤로 사라질 때까지 움직이지 않았다.
의자는 아이에게 묻고 싶었다.
왜 혼자인지.
왜 다른 아이들과 어울리지 않는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러나 묻지 않았다.
누군가에게는 질문조차 무거운 짐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의자는 오랜 세월 동안 배웠기 때문이다.
대신 삐걱거리는 다리로 아이의 무게를 버텼다.
아이가 한쪽으로 기울면 그쪽 다리가 조금 더 깊이 땅을 눌렀다.
바람이 불면 느티나무가 잎을 흔들어 바람을 막아 주었다.
그렇게 의자와 아이는 아무 말 없이 저녁을 맞았다.
3. 의자가 처음으로 들은 말
겨울이 가까워지던 어느 날, 아이가 처음으로 긴 이야기를 꺼냈다.
"나는 혼자 있는 게 싫지 않아."
의자는 귀를 기울였다.
"혼자 그림을 그릴 때도 좋고, 책을 읽을 때도 좋아. 그런데 학교에서 혼자 있으면 사람들이 이상하게 봐."
아이는 운동화 끝으로 흙바닥에 작은 원을 그렸다.
"친구들이 나를 싫어하는 건지, 내가 친구들을 싫어하는 건지 잘 모르겠어."
잠시 침묵이 흘렀다.
"사실은 작년까지 같이 다니던 친구가 있었어."
아이의 목소리가 작아졌다.
"어느 날부터 다른 아이들이 나랑 놀지 말라고 했대. 그 친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 그냥 나를 모르는 사람처럼 지나갔어."
의자는 아이의 어깨가 떨리는 것을 느꼈다.
"그 뒤로 누가 말을 걸어도 겁이 나. 또 어느 날 갑자기 모르는 사람이 될까 봐."
아이는 소매로 눈을 문질렀다.
"그런데 어른들은 자꾸 친구를 사귀라고 해. 내가 먼저 웃으래. 먼저 다가가래."
아이는 고개를 들었다.
"왜 나만 먼저 해야 하지?"
느티나무에서 마른 잎 하나가 떨어졌다.
의자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사실 의자는 대답할 수 없었다.
하지만 만약 말을 할 수 있었다 해도, 그날만큼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이가 필요로 하는 것이 정답은 아닐지도 몰랐다.
"친구는 원래 그런 거야."
"네가 조금 더 노력해 봐."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거야."
그런 말들은 공원에 날아오는 낙엽처럼 흔했다.
그러나 아이의 마음에 내려앉아 오래 머무는 말은 없었다.
아이는 한참 뒤에 다시 입을 열었다.
"이상하지?"
의자는 가만히 있었다.
"사람들이 많을 때는 내가 혼자인 것 같아. 그런데 여기서는 혼자 있어도 그런 생각이 안 들어."
아이는 손바닥으로 의자의 낡은 나무판을 쓰다듬었다.
"너는 내가 아무 말도 안 해도 가라고 하지 않잖아."
그날 의자는 처음으로 자신이 왜 그 자리에 있는지 조금 알 것 같았다.
4. 철거 안내문
며칠 뒤 공원에 노란 안내문이 붙었다.
낡은 시설물을 철거하고 새로운 의자를 설치한다는 내용이었다.
사람들은 반겼다.
"드디어 저 의자를 치우는군."
"공원이 훨씬 깨끗해지겠어."
여섯 개의 의자도 새 의자가 들어온다는 소식에 들떠 있었다.
낡은 의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자신의 다리가 얼마나 약해졌는지 알고 있었다.
비가 오면 나무판 사이로 물이 스며들었고, 바람이 심하게 불면 등받이가 흔들렸다.
언젠가는 누군가 다칠 수도 있었다.
그래서 의자는 철거가 잘못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다만 아이가 찾아왔을 때 앉을 곳이 없을까 봐 걱정되었다.
철거 전날, 아이가 공원에 왔다.
아이는 안내문을 읽었다.
그리고 오랫동안 의자를 바라보았다.
"너도 없어지는구나."
아이는 천천히 앉았다.
"사람들은 오래된 것을 왜 이렇게 쉽게 버릴까?"
그때 공원 관리인이 다가왔다.
"얘야, 거기 앉으면 위험해. 내일 철거할 거야."
아이는 관리인을 올려다보았다.
"꼭 버려야 하나요?"
"다리가 썩어서 위험하단다."
"그럼 고치면 안 돼요?"
관리인은 의자의 다리를 살펴보았다.
"글쎄. 고치는 데 돈도 들고, 또 오래 쓸 수 있을지 모르겠구나."
아이는 잠시 생각했다.
"여기에 앉는 사람이 있어요."
관리인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런데 아무도 없잖니?"
아이는 작게 말했다.
"제가 앉아요."
관리인은 그제야 아이를 바라보았다.
아이는 다시 말했다.
"매일은 아니어도, 제가 앉아요."
관리인은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그동안 낡은 의자를 지나치면서 그곳에 누가 앉는지 살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알겠다. 안전하게 고칠 수 있는지 먼저 알아보마. 하지만 위험하면 그대로 둘 수는 없어."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의자는 아이가 자신을 지켜 주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조금 뒤 다른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아이는 의자를 지킨 것이 아니라, 자신이 이곳에 있었다는 사실을 누군가에게 처음으로 말한 것인지도 몰랐다.
5. 아무도 오지 않아도
겨울 첫눈이 내리기 전, 공원 관리인은 낡은 의자를 수리했다.
썩은 다리는 새 나무로 바꾸고, 흔들리는 등받이에는 튼튼한 받침을 덧댔다.
오래된 얼룩과 흠집은 그대로 남았다.
의자는 전보다 단단해졌지만 새 의자가 되지는 않았다.
아이는 수리가 끝난 날 다시 찾아왔다.
그런데 이번에는 혼자가 아니었다.
조금 떨어진 곳에 다른 아이가 서 있었다.
그 아이는 예전에 낡은 의자 앞을 지나가며 웃었던 아이였다.
두 아이는 한동안 서로를 바라보았다.
"여기 앉아도 돼?"
다른 아이가 물었다.
아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의자는 두 아이가 앉을 수 있을 만큼 넓었다.
하지만 넓다고 해서 반드시 함께 앉아야 하는 것은 아니었다.
다른 아이는 기다렸다.
아이는 마침내 말했다.
"오늘은 혼자 있고 싶어."
다른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그리고 천천히 돌아갔다.
의자는 조금 놀랐다.
예전 같았으면 아이가 혼자 남겨졌다는 사실을 슬퍼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날 아이의 어깨는 움츠러들지 않았다.
아이는 가방에서 작은 수첩을 꺼냈다.
첫 장에는 느티나무가 그려져 있었다.
두 번째 장에는 비 오는 공원이 그려져 있었다.
세 번째 장에는 낡은 의자가 그려져 있었다.
아이는 빈 네 번째 장을 펼쳤다.
그리고 연필로 천천히 글을 썼다.
'오늘은 내가 혼자 있기로 했다.'
잠시 뒤 아이는 그 아래에 한 문장을 더 적었다.
'하지만 내일은 누군가와 앉고 싶을지도 모른다.'
의자는 그 문장을 읽을 수 없었다.
다만 아이가 오랜만에 등을 곧게 펴고 앉아 있다는 것을 느꼈다.
해가 지자 아이는 수첩을 덮고 일어났다.
"내일 봐."
아이는 손을 흔들고 공원을 떠났다.
의자는 다시 혼자가 되었다.
느티나무가 물었다.
"오늘도 기다릴 거니?"
의자는 잠시 생각했다.
"응. 하지만 예전처럼 기다리지는 않을 거야."
"어떻게 다른데?"
"예전에는 누군가 오지 않으면 내가 쓸모없는 의자인 줄 알았어."
느티나무는 조용히 잎을 흔들었다.
"지금은?"
의자는 아이가 앉았던 자리를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작은 온기가 남아 있었다.
"오늘은 아무도 오지 않아도, 나는 여기 있어."
느티나무는 더 묻지 않았다.
밤이 깊어졌다.
공원에는 아무도 없었다.
여섯 개의 의자도, 일곱 번째 의자도 모두 비어 있었다.
그러나 일곱 번째 의자는 처음으로 그 빈자리를 서둘러 채우고 싶지 않았다.
멀리서 바람이 불어왔다.
느티나무가 천천히 몸을 흔들었다.
그리고 낡은 의자 위로 첫눈 한 송이가 내려앉았다.
의자는 눈을 털어내지 않았다.
누군가의 무게를 버티던 자리에서, 이번에는 아주 가벼운 눈송이 하나를 오래도록 받치고 있었다.
이야기 속 균열에 대한 질문
이 동화에서 의자와 아이는 서로 닮아 있다. 의자는 아무도 앉지 않는다는 이유로 쓸모없는 존재처럼 취급받고, 아이는 친구들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이상한 아이가 된다.
그러나 두 존재의 외로움은 단순히 혼자 있기 때문에 생긴 것이 아니다. 의자는 자신의 존재가 필요하지 않다고 느끼고, 아이는 타인에게 거절당한 기억 때문에 관계를 두려워한다.
여기서 세 가지 질문이 생긴다.
- 사람들에게 선택받지 못한다는 사실이 존재의 가치를 결정할 수 있을까?
- 누군가를 위로한다는 것은 반드시 말을 건네고 해결책을 제시하는 일일까?
- 아이가 혼자 있고 싶다고 말했을 때, 우리는 그것을 고립으로 보아야 할까, 스스로 내린 선택으로 존중해야 할까?
철학적 해설 | 한나 아렌트, 혼자 있음과 외로움의 차이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혼자 있는 상태와 외로움을 구별했다.
아렌트의 사유에서 고독(solitude)은 단순히 주변에 사람이 없는 상태가 아니다. 혼자 있으면서도 자신과 생각하고 대화할 수 있는 상태다. 반면 외로움(loneliness)은 타인과의 연결뿐 아니라 자기 자신과의 관계마저 흔들리는 경험과 관련된다.
이 구별은 『전체주의의 기원』과 『정신의 삶』에서 전개되는 아렌트의 논의를 이해하는 중요한 단서다.
동화 속 아이는 처음에는 타인에게 배제당해 혼자가 된다. 그때의 혼자 있음은 자유로운 선택이 아니라 관계에서 밀려난 결과다.
그러나 마지막 장면에서 아이는 스스로 혼자 있기를 선택한다. 다른 아이가 함께 앉아도 되는지 묻자 아이는 "오늘은 혼자 있고 싶어"라고 말한다.
이 장면에서 달라진 것은 아이에게 친구가 생겼다는 사실이 아니다.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고, 관계의 거리를 결정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이 변화를 완전한 회복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아이를 배제했던 학교의 관계 구조는 여전히 남아 있다. 아이의 고통을 개인의 마음가짐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이유다.
또한 의자의 침묵이 언제나 최선의 돌봄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누군가에게는 조용한 동행이 필요하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적극적인 보호와 실질적인 도움이 필요하다. 특히 따돌림을 경험하는 아동에게는 주변 어른들의 책임 있는 개입이 중요하다.
동화 속 의자는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다. 다만 아이가 자신의 이야기를 꺼낼 수 있는 자리를 내어 준다.
그 자리는 치유를 약속하는 공간이 아니라, 아직 괜찮아지지 않아도 머물 수 있는 공간이다.
아렌트의 철학이 우리에게 제공하는 것은 외로움에 대한 간단한 처방이 아니다. 혼자 있는 시간을 자기 자신과 관계 맺는 시간으로 살아갈 가능성과, 타인에게서 고립되지 않을 사회적 조건을 함께 생각하게 하는 관점이다.
삶에 가져갈 마지막 질문
1. 나는 혼자 있는 시간을 두려워하는가, 아니면 사람들 속에서도 이해받지 못한다는 느낌을 두려워하는가?
2. 내 주변에는 말없이 곁을 지켜 줄 사람이 있는가? 나는 누군가에게 그런 자리를 내어 준 적이 있는가?
3. 내가 외롭다고 느끼는 순간, 내게 필요한 것은 새로운 관계인가, 안전한 거리인가, 아니면 나를 배제하는 환경의 변화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