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선 소감]
"세상의 어떤 시련도 한 사람의 진정한 빛을 완전히 가릴 수는 없었습니다."
어릴 적 악보를 보기도 전에 멜로디의 결을 알아채던 아이, 모진 풍파 속에서도 10개가 넘는 자격증을 따내며 끝내 스스로를 붙잡으려 애쓰던 나의 딸 소리.
‘제8회 코스미안상’ 수상 소식을 들었을 때, 기쁨에 앞서 지난 세월 우리 가족이 함께 지나온 깊고 어두운 밤들이 먼저 떠올랐습니다. 부모로서 무지와 오판으로 아이의 손을 놓쳤던 날들의 죄의식은 여전히 가슴에 아린 흉터로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딸아이는 절망의 문을 닫고, 마침내 치유와 희망으로 통하는 새로운 문을 스스로 열어주었습니다. 아이가 찾아낸 그 희미한 빛줄기를 따라 우리 가족도 비로소 절망을 털어내고 오늘을 살아갈 용기를 얻었습니다.
오늘 이 상은 제 글이 훌륭해서가 아니라, 삶을 포기하지 않고 꿋꿋하게 자신의 빛을 찾아 나간 제 딸 소리가 세상에 전하는 희망의 메시지에 주신 상이라고 믿습니다.
귀한 상을 주신 코스미안상 관계자분들께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세상이 딸아이의 걸음을 다그칠 때, 언제든 편히 돌아올 수 있도록 늘 환하게 문을 열어두는 부모가 되겠습니다.
아울러 어둠 속에서 끝없는 터널을 지나고 계신 모든 환우와 가족분들의 삶에도 마침내 환한 빛이 돌아오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감사합니다.
[칼럼] 소리가 돌아오는 문
사람은 누구나 태어날 때부터 자기만의 빛을 품고 세상에 온다고 합니다. 우리 둘째 딸 소리에게 그 빛은 무엇보다 음악이었습니다. 소리는 악보의 음표보다 먼저 멜로디의 결을 알아들었고, 처음 듣는 곡도 몇 번 반복하면 자기 것으로 만드는 절대음감의 재능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평탄할 줄 알았던 아이의 삶은 아버지의 잦은 이직으로 인해 여수, 익산, 서울을 거치며 초등학교를 세 번이나 옮겨야 하는 불안정한 환경 속에서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중학생 무렵에는 전주의 예술중학교 기숙사로 아이를 보내게 되었고, 이후 서울로 올라와 광진구의 예중에 전학하려 했으나 경제적 형편 때문에 좌절되었습니다. 바이올린을 내려놓은 소리는 일반 중학교에서 컴퓨터활용능력과 워드프로세서 1급 자격증을 따고 교육청 정보의 바다 탐구대회에서 금상을 수상하며 ‘컴퓨터 꿈나무’로 선정되는 등 악착같이 버텨냈습니다.
그러나 여고를 졸업하고 대학에 진학한 이후 삶의 시련은 더욱 거세게 밀려왔습니다. 유럽 글로벌 리더십 트레이닝에 이어 참여한 필리핀 어학연수와 아프리카 난민 대학생 봉사단 활동은 40일간의 합숙과 하루 60번씩 버스를 갈아타는 극한의 모금 활동으로 이어졌고, 누적된 긴장과 체력적 한계는 아이의 마음을 더 이상 버티지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어느 날 저녁, 소리는 아무 연락도 없이 집으로 불쑥 돌아와 "오늘만 집에서 자고 싶다"며 눈물로 호소했습니다. 그러나 부모인 우리는 '시작한 일을 중간에 그만두면 안 된다'는 낡은 가치관과 무지 속에서, 아이를 품어 안아 재워주는 대신 다시 현관문 밖으로 돌려보내는 뼈아픈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당시 정신질환에 대한 사회적 지식이 거의 없던 시절, 우리는 아이의 고통을 단순한 피로로 여겼고, 전문적인 의료 조치를 취하는 대신 경기도의 한 수련소 겸 병원에서 진행하는 40일 수련 프로그램을 네 차례나 받게 했습니다. 그 시절의 선택이 가장 소중한 골든타임을 놓치게 만든 원인이 되었음을 뒤늦게 깨달았을 때, 우리 부부를 짓눌렀던 죄책감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무거웠습니다.
시간이 흘러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를 시작했으나, 오랜 세월 쌓인 병마는 쉽게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불안과 환청, 망상이 반복되어 서울대병원에 한 달 이상 입원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약을 복용하며 안정을 찾아갈 무렵 결혼하여 예쁜 손녀 연아를 낳았고, 아이는 소리에게 다시 살아갈 가장 분명한 이유가 되어 주었습니다. 하지만 만성 조현병의 무게를 품고 가정을 유지하기란 너무나 힘겨웠고, 결국 이혼 후 홀로 친정으로 돌아와 방문을 닫고 숨죽여 울어야 했습니다.
새로운 삶을 살겠다는 절박함으로 개명 허가 신청서를 올리고, 이력서를 내면 합격 통보를 받으면서도 마음속 공포와 환청 때문에 수없이 입사와 퇴사를 반복했습니다. 주변에서는 의지 부족이라 말할지 모르지만, 소리는 심리학, 철학, 조리, 미용, 원예 등 책을 쌓아두고 공부하며 발병 후 무려 10개의 자격증을 추가로 따내며 무너지는 자신을 필사적으로 붙잡고 있었습니다.
병이 깊어져 가족의 힘으로 감당하기 힘든 순간도 찾아왔습니다. 교회 식당에서의 돌발 행동으로 '보호 입원' 절차를 밟게 되었을 때, 경찰과 함께 병원으로 향하며 울부짖는 딸을 보는 부모의 가슴은 또 한 번 무너졌습니다. 하지만 이번 입원은 달랐습니다. 의료진은 소리의 말을 끝까지 들어주며 신뢰를 쌓았고, 입원 한 달 만에 면회실에서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의사가 "병식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치료에서 가장 중요한 문을 이제야 열고 들어온 겁니다"라고 말한 것입니다. 스무 해 넘도록 기다려 온 그 한 마디는 터널 끝의 희미한 빛이었습니다.
퇴원하는 날, 소리는 스스로 약봉지를 가방에 챙겨 넣으며 병원 문을 나섰습니다. 요즈음 소리는 진료 일정을 스스로 확인하고 마침내 마음속에 품어왔던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당당히 손에 쥐었으며,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기다리며 자신처럼 아픈 이들의 손을 잡아주는 새로운 꿈을 향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한 달에 한 번 집에 오는 외손녀 연아가 엄마 품에 안겨 재잘거릴 때 소리의 얼굴에는 세상에서 가장 환한 웃음이 번집니다.
우리는 장애인 등록을 권유할 때마다 "나는 장애인이 아니야"라며 단호하게 거부하는 딸의 마음을 이제야 조금씩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병을 인정하기까지 20년이 걸린 아이에게 '장애'라는 이름은 행정적 절차가 아니라 자신의 존재를 규정하는 낙인처럼 느껴졌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설득하는 대신 묵묵히 기다려 주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과거의 후회와 무지를 돌이킬 수는 없지만, 후회만으로는 아무도 살릴 수 없다는 것을 세월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었습니다. 사랑은 과거를 붙잡는 일이 아니라 오늘 눈앞에 있는 아이의 손을 놓지 않는 일입니다. 세상이 아이의 서툰 걸음을 다그칠 때, 우리 가족만큼은 가장 먼저 문을 열어주는 따뜻한 울타리가 되어 두려움 대신 미소를 품고 내일을 향해 걸어갈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