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일걸 칼럼] 숲이 우리를 부르고 있다

제8회 코스미안상 대상

[당선 소감]

 

당선 통보를 받는 순간, 세상에서 가장 먼 길을 돌아 여기까지 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에겐 무한한 영광이며 더할 나위 없는 기쁨이었습니다. 먼저 작년에 돌아가신 아버지께 이 영광을 바칩니다. 만약에 아버지가 살아 계셨더라면 얼마나 기뻐하셨을까요. 저는 1995년에 전북일보 신춘문예에 동화가 당선되어 문단에 들어왔습니다. 1997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다시 동화가 당선되었습니다. 2006년 신춘문예에선 조선일보와 전남일보에 희곡이 당선되었고요. 2008년 광주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었고 2013년엔 소설이 경남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2020년엔 대전일보 신춘문예에 동시가 당선되었습니다. 모 방송국 라디오 드라마작가로 활동한 경력도 있고, 여러 차례 문학상을 수상하며 여기까지 왔습니다. 

 

30년 넘게 글을 쓰며 살아왔습니다. 참 멀고도 외롭고 험한 길이었습니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제 곁에 계시지 않았다면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 겁니다. 글을 쓰는 남편을 만나 고생하는 아내에게 고마움을 전합니다. 그리고 제 자식들과도 기쁨을 나누고 싶습니다. 남들이 저에게 왜 글을 쓰냐고 질문을 던질 때마다 저는, 말을 잘 못해서 글로 대신한다고 말하곤 합니다. 정직한 글쓰기로 저의 모든 걸 보여 드리겠습니다.

 

며칠 뒤면 아버지 생신이어서 성묘를 갈 생각입니다. 이렇게 좋은 소식을 갖고 아버지를 찾아뵐 수 있는 기회를 주신 코스미안상 관계자 여러분들께 깊이깊이 감사드립니다. 작년 늦가을에 아버지가 임종하시는 걸 지켜보며 제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아버지 손을 부여잡고 사랑한다는 말을 하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그래서 안타깝고 참담했었습니다. 귀한 지면을 빌려 아버지에게 전합니다, 사랑합니다, 아버지!

 

 

[제8회 코스미안상 대상] 숲이 우리를 부르고 있다 

 

미국 대평원에 위치한 소도시에서 반 년 넘게 거주한 외삼촌은 미국 시민권을 취득하는 걸 포기하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미국 시민인 이모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외삼촌이 한국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던 사연이라는 게 대평원이 산이 없는 평지로 이루어져 있어 답답해서 견딜 수 없었다는 것이다. 가도 가도 끝없이 펼쳐진 초원에 숨이 턱 가로막힌 기분이 들더란다. 외삼촌은 밑줄을 긋는 지평선 위에 어떤 문장도 올려놓지 못했다. 외삼촌은 무심히 눈길만 돌려도 산과 마주칠 수밖에 없는 한국과는 전혀 다른 환경에서 적응하지 못하고 귀국을 서두른 것이다. 

 

대한민국은 지정학적으로 산악 지대를 형성하고 있다. 국토의 상당한 부분은 산악 지형이 차지하고 있다. 가까운 곳에 숲이 위치해 있어 조금만 걸어도 나무가 우거진 숲에 진입할 수 있다. 말 그대로 엎어지면 코 닿을 데에 숲이 있는 것이다. 굳이 산과 통성명을 하지 않고도 어깨동무를 할 수 있는 게 대한민국이다. 한반도는 자원이 풍부한 나라는 아니지만, 천혜의 자연 조건을 구축하고 있는 셈이다. 한국 사람들은 오밀조밀한 숲에 둘러싸여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산이 든든한 울타리처럼 우리의 삶을 감싸 안고 있다. 산과 밀착되어 있는 이 땅의 사람들은 산과 너나들이도 가능하다.  

 

한국의 산들은 비교적 험준하지 않게 나지막이 엎드려 있는 형세를 갖추고 있다. 반복 재생되는 일상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숲이 길을 열어 보인다. 상형문자처럼 뒤엉킨 나뭇가지들을 가만히 살펴보노라면 사무치지 않는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푸르른 숲에서 맑은 공기를 한껏 들이마셔 보라. 풀냄새와 뒤섞인 풋풋한 향기가 코를 찌르면 재채기 같은 그리움에 자신도 모르게 꼭꼭 감춰 두었던 사랑을 발설하고 만다. 온몸 부대끼며 휘날리는 나뭇잎들 사이로 그리운 이들의 얼굴이 보일 듯 말 듯 하다. 거기에 산새들의 노래가 덧붙어지면 숲은 말 그대로 춤판이다. 한 걸음 한 걸음, 숲을 중심을 향해 나아갈 때가 바로 지금이다.  

 

숲은 인간의 삶을 정화하는 데에 있어 가장 적합한 터전이다. 굳이 산림욕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숲은 살가운 손길로 우리의 몸과 마음을 쓰다듬는다. 망명신청을 하듯이 숲에게 자기 자신을 온전히 내어주면 숲은 우리에게 카타르시스를 베푼다. 숲은 우리에게 편안한 휴식의 시간을 제공한다. 넉넉한 여유는 숲이 추가하는 덤이다. 

 

산비탈을 타고 내려온 바람이 우리가 사는 동네를 휘감아 돌고 있다. 고요히 귀 기울여 보라. 숲이 나직한 속삭임으로 우리를 부르고 있지 않은가. 거의 재앙에 가까운 수준의 기후 변화에 직면한 인류가 기댈 언덕은 숲뿐이다. 숲은 최후의 노아의 방주이다. 인류는 기상 관측 이래 최악의 시나리오 앞에서 미처 대처할 방법을 찾지 못한 채 혼돈에 빠져 있다. 이러한 혼란스런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숲을 더욱 푸르고 울창하게 가꾸는 것뿐이다. 숲에서 활로를 모색할 시점이다.  

 

숲은 대자연의 집약체이다. 우리가 숲길에서 내딛는 한 걸음 한 걸음은 자연과의 교감하는 시간이다. 이렇게 숲이 우리의 생활환경에 근접해 있는데도 산을 멀리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숲을 놓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 도시 문명이 제공하는 콘크리트 구조물에 갇혀 제대로 숲을 보지 못하는 이들이 있다. 자동차를 타고 속도의 광기에 사로잡혀 폭주하면서 숲의 제자리걸음을 제대로 읽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가 아무리 멀리 달아나도 이 땅에선 산에서 벗어날 수 없는 데도 말이다.  

 

이 땅의 사람들의 내세관의 첫자리를 차지하는 것이 산이다. 굳이 북망산천을 거론하지 않아도 한국 사람들은 무심결에 먼 산에 자기 자신을 걸어두고 살아간다. 먼 산을 보는 것만으로도 온갖 번뇌를 바닥에 내려놓고 깊은 사색에 잠길 수 있는 게 한국 사람들이다. 산을 신성시 한 것이 우리 조상들이다. 산에는 산신령이 있다고 우리 조상들은 믿어 의심치 않았다. 선조들은 풍수지리학으로 산세를 읽고 명당을 찾기도 했다. 숲에는 태초의 시간만이 있는 게 아니다. 우리의 미래 또한 숲에 깃들어 있다. 우리가 숲과 어떤 관계를 형상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현재는 물론이고 미래까지 달라질 것이다.

 

어찌 보면 산 너머 남촌이야말로 우리의 이상향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꿈꾸는 이상향이 산 너머에 있다면 힘찬 걸음으로 산행을 감행해야 하지 않을까. 흘러간 노래 가사이지만, 나 역시 도대체 산 너머 남촌에는 누가 살고 있는지 몹시 궁금할 때가 많다. 산 너머 남촌에는 누가 살고 있길래 산 이편의 나의 가슴은 이다지도 거세게 두근거리는 걸까? 순간 내 얼굴에 번지는 홍조는 단풍 빛으로 물든 숲과 동일선상에서 읽힌다. 산 너머에 네가 있는데 여기서 걸음을 멈출 수는 없지 않은가. 듣고 있는가. 보고 있는가. 숲이 나를 부르는 소리를 움켜쥐고 산비탈을 오르기 위해 한없이 자신을 낮춰야 한다.  

 

작성 2026.10.13 10:46 수정 2026.10.13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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