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리 옥스먼, 대장균 배양으로 실크에 색 입히는 디자인 실험

3D 편직 직물에 용액 분사…24시간 배양 뒤 세척·건조

분사 위치와 밀도로 무늬 조절하고 케이프 4점으로 구현

시제품 단계로 환경 영향에 대한 광범위한 전과정평가는 미실시

[화담일보 = 김도겸기자] 디자이너 네리 옥스먼의 스튜디오가 박테리아를 배양해 실크 직물에 옅은 남색과 분홍색을 입히는 염색 방식을 선보였다. 디자인 매체 디진에 따르면 ‘비질스(Vigils)’라는 이름의 이 프로젝트는 3D 편직 실크에 박테리아 용액을 뿌린 뒤 배양 과정에서 색과 무늬가 생기도록 하는 연구다. 스튜디오는 이 기법을 보여주기 위해 케이프 4점을 제작했다.

 

비질스는 디자이너와 예술가, 협업자들이 소재와 미적 표현의 새로운 형태를 탐색하도록 개발됐다. 완성된 직물에 색을 덧입히는 과정뿐 아니라 미생물이 자라는 위치와 밀도, 그에 따라 나타나는 색의 차이를 디자인 요소로 삼는다. 케이프에는 박테리아가 만들어낸 차분한 색조와 서로 다른 패턴이 드러난다.

 

공정에는 박테리아에 반응하는 화학물질로 코팅한 투사 실크 실이 쓰인다. 연구팀은 이 코팅이 분사 용액과 섞이면 ‘생물반응기’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다. 용액을 뿌린 직물은 24시간 동안 놓아두며, 이 사이 용액과 화학물질이 상호작용해 살아 있는 박테리아 배양체를 형성한다.

 

옥스먼 연구실이 만든 분사 용액에는 대장균의 BL21 균주가 들어간다. 이 균주는 생명공학과 합성생물학 연구에서 흔히 사용된다. 연구팀의 설명에 따르면 수십억 개 세포 규모의 박테리아가 직물 위로 퍼지면서 아미노산을 남기고, 이 물질이 직물에 색을 낸다. 배양을 마친 직물은 세척하고 건조해 박테리아를 제거하며, 색소는 직물에 남도록 한다.

 

무늬를 만드는 데에는 용액을 뿌리는 방식이 관여한다. 디자이너가 어느 위치에 얼마나 조밀하게 배양체가 자라도록 분사했는지에 따라 성장 패턴이 달라진다는 것이 연구팀의 설명이다. 연구팀은 미생물이 직물 바탕과 관련된 신호에 반응하며, 이 때문에 생물학적 활동 자체가 소재를 만드는 과정의 일부가 된다고 밝혔다.

 

스튜디오는 이 작업의 목적을 합성생물학과 소재 시스템의 상호작용을 살펴보는 데 두고 있다. 이미 최적화된 산업용 염색 공정을 제시하는 단계는 아니라는 설명이다. 옥스먼은 생물학적 과정이 디자인 자체에 참여하면서 기존 염색으로는 얻기 어려운 패턴과 변화를 만들고, 각각의 직물이 자신을 만들어낸 과정을 드러내게 된다고 설명했다.

 

자원 소모가 큰 산업 염색의 대안이 될 가능성도 제시했지만, 비질스는 아직 시제품 단계다. 환경 영향을 측정하는 광범위한 전과정평가(LCA)도 거치지 않았다. 따라서 현재 공개된 결과는 박테리아를 이용한 발색과 무늬 형성을 케이프로 구현한 연구 사례이며, 기존 공정에 비해 환경 부담을 얼마나 줄일 수 있는지를 입증한 성과로 제시된 것은 아니다.

작성 2026.11.03 17:08 수정 2026.11.03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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