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업 아이디어를 설명하자 “탁월한 통찰”이라는 답이 돌아온다. 직장에서 겪은 갈등을 털어놓으면 내 감정을 이해한다는 위로가 이어진다. 보고서 작성부터 진로 상담까지, 인공지능과의 대화는 어느새 일상의 깊숙한 영역으로 들어왔다. 그러나 친절하고 논리적인 답변을 얻는 것과 올바른 판단에 도달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AI 전문가이자 호주·뉴질랜드 변호사인 박경진 변호사는 특별강연 ‘당신은 AI에 가스라이팅 당하는 중’을 통해 이 간극을 조명한다. AI의 활용 범위가 넓어지는 시대에 인간이 스스로 확인하고 판단해야 할 것은 무엇인지, 기술과 법률의 시각을 교차해 살펴보는 강연이다.
제목에 등장하는 ‘가스라이팅’은 AI가 의도를 갖고 이용자를 심리적으로 조종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유창한 설명과 자신에게 호의적인 답변을 반복해서 접하는 과정에서, 이용자가 검증을 생략하거나 자신의 판단을 과도하게 의탁하게 되는 상황을 비유한 표현이다. 강연은 자극적인 제목에서 출발하지만, 논의의 초점은 인간의 사고와 선택에 놓인다.
박 변호사는 IT 석사과정을 거치며 수백 개의 웹사이트와 모바일 앱을 개발해왔다. 서비스를 직접 기획하고 구현한 경험에 호주와 뉴질랜드의 법률가로서 쌓아온 훈련을 더했다. 기술이 결과를 만들어내는 방식과 그 결과를 근거로 판단하는 과정 사이를 함께 들여다볼 수 있는 배경이다.
개발 과정에서는 입력과 조건에 따라 결과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살핀다. 법률 검토에서는 주장과 사실을 구분하고, 증거가 결론을 충분히 뒷받침하는지 따진다. 강연은 이러한 접근을 AI와의 대화에 적용한다. 답변이 얼마나 매끄러운지를 넘어, 어떤 전제에서 출발했고 무엇을 확인했으며 어떤 정보가 빠져 있는지를 묻는 방식이다.
이를 보여주는 장면은 일상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상사가 나를 질투하는 것 같다”는 질문에는 이미 상대방의 행동에 대한 해석이 담겨 있다. 이 상태에서 돌아온 답변을 자신의 판단을 입증하는 자료처럼 받아들이면, 확인되지 않은 추측이 확신으로 굳어질 수 있다. AI는 사건의 모든 당사자를 만나거나 전체 경위를 확인한 것이 아니지만, 이용자는 충분한 검토를 거친 조언처럼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반면 “이 행동을 설명할 수 있는 다른 가능성은 무엇인가”라고 질문하면 검토의 범위를 넓힐 수 있다. 강연은 이처럼 질문에 담긴 전제를 드러내고, 같은 사안을 다른 관점에서 살펴보는 과정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청중이 평소 사용하는 질문을 돌아보며 직접 대입할 수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사업과 창업에 관한 대화도 주요 소재다. 새로운 사업계획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답변을 받았다고 해서 고객 수요와 수익성이 검증된 것은 아니다. 반대로 위험 요소를 길게 나열한 답변만으로 사업의 실패를 단정할 수도 없다. 실제 고객을 만났는지, 비용을 계산했는지, 경쟁 서비스를 확인했는지에 따라 판단의 근거는 달라진다.
이 대목에서 강연은 AI의 답변을 평가하는 일을 넘어 이용자 자신의 반응을 살펴보게 한다. 사람은 자신이 기대했던 결론에 얼마나 쉽게 동의하는가. 듣고 싶었던 말에는 출처를 덜 묻고, 불편한 지적에는 더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고 있지는 않은가. AI와의 대화가 자신의 생각을 검토하는 과정인지, 이미 정한 결론을 확인받는 과정인지 돌아보게 하는 질문이다.
강연의 재미 역시 이러한 자기 발견에서 나온다. AI의 오류를 찾는다고 생각했던 순간, 정작 그 답을 믿고 싶어 했던 자신의 모습을 마주하게 된다. 자기소개서를 작성하거나, 중요한 이메일을 다듬거나, 인간관계에 대한 조언을 구해본 경험이 있다면 복잡한 기술 지식 없이도 논의에 참여할 수 있다.
질문의 표현과 조건을 바꿔 답변을 비교하는 구성은 추상적인 문제를 구체적인 장면으로 바꾼다. 같은 사안에서도 무엇을 먼저 제시하고 어떤 관점을 요구하는지에 따라 설명의 방향이 달라질 수 있음을 살펴보는 것이다. 청중에게 필요한 것은 전문 용어를 암기하는 일이 아니라, 자신이 받아들인 결론을 한 번 더 검토하는 태도다.
기업과 조직에서는 이러한 문제가 의사결정의 구조와 연결된다. AI가 작성한 보고서가 회의에 올라오고, 요약된 자료가 사업 방향을 정하는 근거로 사용될 때 누가 사실관계를 확인해야 하는가. 원문을 읽지 않은 채 요약만으로 결론을 내리거나, 출처를 확인하지 않고 수치를 인용하는 관행은 문서의 완성도만으로 발견하기 어렵다.
법률가의 시각은 이 지점에서 의미를 갖는다. 문장을 생성한 주체와 그 문장을 검토해 실제 업무에 사용하는 주체의 역할을 구분하고, 검토 과정에서 어떤 책임을 맡아야 하는지 생각하게 한다. 기업 교육에서는 보고와 승인 절차, 경영진 강연에서는 판단의 근거와 반대 의견을 다루는 방식으로 논의를 확장할 수 있다.
학생과 청년에게는 학습과 전문성의 문제가 남는다. 답안을 제출할 수 있는 것과 그 내용을 이해하고 설명할 수 있는 것은 다르다. AI가 정리한 논리를 자신의 언어로 풀어낼 수 있는지, 예상하지 못한 질문에도 답할 수 있는지는 별도의 확인이 필요하다. 취업과 창업을 준비하는 과정에서도 자신을 설득하는 문장과 실제 준비 수준 사이의 거리를 살펴볼 수 있다.
박 변호사의 개발 경험은 논의를 현실적인 활용의 문제로 이어준다. 서비스를 직접 만들어본 사람에게 기술의 편리함은 구체적이다. 동시에 결과물이 빠르게 완성될수록 그 안의 내용과 작동 방식을 어디까지 이해하고 있는지 묻게 된다. 강연은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AI 활용과 인간의 전문성이 만나는 지점을 다룬다.
기업 임직원 교육과 최고경영자과정, 공공기관 특강, 대학의 진로·창업 강연에서는 청중이 실제로 마주하는 판단 상황에 따라 주제를 구성할 수 있다. 경영자는 사업계획과 투자 검토를, 실무자는 보고서와 고객 대응을, 학생은 과제와 진로 선택을 떠올리며 같은 질문을 각자의 자리로 가져가게 된다.
‘당신은 AI에 가스라이팅 당하는 중’이 던지는 질문은 명확하다. 오늘 AI에게 받은 답변 가운데 직접 확인한 것은 무엇이며, 그 답을 받아들인 이유를 자신의 말로 설명할 수 있는가. 기술이 더 많은 답을 제공하는 시대, 박경진 변호사의 특별강연은 그 답을 선택하는 인간의 판단 과정을 들여다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