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공을 살린 예천의 참선비, 약포 정탁 500년 만에 깨어나다

임진왜란 극복의 숨은 주역, 그 위대한 발자취를 예천박물관에서 만나다

국가 위기 속 빛난 '목숨 건 상소', 현대 리더가 갖춰야 할 참된 충(忠)의 표상

보물 22점 등 80여 점 대공개, 역사적 진실과 마주하는 경북 문화 탐방의 핵심

예천군 약포 정탁 탄신 500주년 기념 특별전 개최(홍보자료), 사진제공=예천군

조선 중기, 국가의 명운이 풍전등화와 같던 임진왜란 당시 나라를 구한 진정한 영웅은 누구인가. 많은 이들이 충무공 이순신을 떠올리지만, 그가 사형 위기에 처했을 때 목숨을 걸고 적극적으로 구명에 나선 숨은 주역이 있다. 바로 예천이 낳은 위대한 학자이자 관료인 약포 정탁(鄭琢, 1526~1605) 선생이다.

 

올해로 탄신 500주년을 맞이한 약포 정탁 선생의 숭고한 정신을 기리는 대규모 특별전이 열린다. 전시는 11월 5일부터 다가오는 2027년 4월 30일까지 예천박물관 1층 기획전시실에서 ‘붓 끝에 담긴 충(忠), 약포 정탁 지금에 닿다’라는 주제로 진행된다. 이번 행사는 단순한 유물 전시를 넘어,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 신념과 지혜로 국난을 극복한 한 지식인의 치열한 삶을 현대적 관점에서 재조명하는 뜻깊은 자리다.

 

정탁 선생은 퇴계 이황의 학문을 이어받은 정통 성리학자이면서도, 실천적 경세가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한 인물이다. 전란이라는 벼랑 끝 상황 속에서도 흔들림 없이 국정을 보좌했으며, 특유의 청렴함과 곧은 성품으로 백성과 군주 모두에게 깊은 신뢰를 받았다. 특히 이순신 장군이 모함을 받아 투옥되었을 때, 자신의 목숨을 건 상소인 '신구차(伸救箚)'를 올려 장군을 사지에서 구해낸 일화는 오늘날까지도 시대를 초월한 참된 용기와 충심의 상징으로 회자된다.

 

이번 특별전은 이러한 정탁 선생의 정치적 식견과 인간적인 고뇌를 입체적으로 체감할 수 있도록 다채롭게 구성되었다. 전시장에는 보물 22점과 도지정 국가유산 1점을 비롯해 도합 80점에 달하는 귀중한 역사적 사료들이 대거 출품되었다. 관람객들의 시선을 사로잡을 핵심 유물로는 단연 보물로 지정된 ‘정탁 초상’이 꼽힌다. 선비의 꼿꼿한 기개와 따뜻한 애민 정신이 고스란히 담긴 초상화는 500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깊은 울림을 전한다.

 

또한, 임진왜란 당시 험난했던 피난 과정을 생생하게 기록한 「피난행록」이 포함된 『약포선생문집』, 급박한 전시 상황 속에서 군사적 대응 전략을 치밀하게 담아낸 『용만문견록』 등은 당시의 긴박했던 역사적 현장으로 관람객을 안내한다. 이순신 장군 구명을 위해 작성된 상소의 초고가 수록된 『선현유적』 앞에서는 누구나 숙연해질 수밖에 없다. 향촌 사회의 질서를 바로잡기 위해 그가 손수 작성한 「고평동계경정약문」은 관료로서의 거시적 안목뿐만 아니라, 지역 사회를 아끼는 미시적 애정까지 동시에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다.

 

당시의 참혹했던 전쟁 상황을 보다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무기류 전시도 눈길을 끈다. 승자총통, 화전, 통아, 편전 등 조선 시대를 대표하는 실전 무기들이 함께 전시되어, 단순한 기록을 넘어 생생한 국난 극복의 현장감을 부여한다. 활자 중심의 사료 전시가 자칫 지루해질 수 있는 단점을 보완하고, 무기라는 직관적인 매개체를 통해 역사적 사실에 대한 몰입도를 한층 높였다.

 

전시 개막을 기념하는 뜻깊은 부대행사도 준비되어 있다. 경북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정우락 교수가 초청되어 정탁 선생의 생애와 그가 남긴 학문적, 역사적 유산의 가치를 짚어보는 특별 강연을 펼친다. 학술적 깊이와 대중적 흥미를 동시에 충족시키는 이 강연은 정탁이라는 인물을 처음 접하는 대중들에게 훌륭한 길라잡이가 될 전망이다.

 

예천은 예로부터 충효의 고장으로 불려왔다. 이번 특별전은 이러한 지역적 정체성을 확고히 다지는 동시에, 약포 정탁이라는 거인이 남긴 '충(忠)'의 진정한 의미를 되묻는다. 맹목적인 복종이 아닌, 국가와 백성을 위해 목숨을 걸고 옳은 소리를 냈던 실천적 지식인의 표상. 혼란스러운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약포 정탁의 붓끝은 여전히 날카롭고 묵직한 가르침을 던지고 있다.
 

 

 

작성 2026.10.28 23:07 수정 2026.10.28 23:13

RSS피드 기사제공처 : 농업경영교육신문 / 등록기자: 강구열 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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