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방산 테크 기업 안두릴의 기업가치가 약 900억 달러, 우리 돈으로 122조 원 수준까지 평가받았다는 소식은 한국 방위산업에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지난해 매출이 약 22억 달러인 이 기업에 시장이 높은 가치를 부여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핵심은 단순한 무기 생산이 아니라 인공지능(AI), 소프트웨어, 무인체계, 자율작전 기술을 결합한 새로운 방산 사업 모델에 있다. 한국 방산은 K2 전차, K9 자주포, 천무, 천궁-II 등 다양한 무기체계를 앞세워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입증했다. 신속한 납기와 가격 경쟁력, 대량생산 능력은 분명한 강점이다. 그러나 이러한 성공 공식만으로 미래 방산시장의 주도권까지 보장할 수는 없다. 전장의 경쟁력이 개별 무기체계의 성능에서 여러 체계를 연결하고 정보를 실시간으로 처리하는 능력으로 확장되고 있기 때문이다.
미래 전장에서는 레이더와 위성, 무인기, 지휘통제체계가 유기적으로 연결돼야 한다. 탐지한 정보를 얼마나 신속하게 분석하고 작전 판단과 대응으로 연결하느냐가 전투 효과를 좌우한다. 결국 전차와 미사일을 잘 만드는 능력에 더해, 이들을 하나의 네트워크로 통합하고 소프트웨어를 지속적으로 개선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안두릴의 사례에서 주목할 부분은 AI 자체보다 개발 방식의 변화다. 소프트웨어 중심의 설계와 반복적인 시험·개선을 통해 기술 발전 속도를 높이고, 무인체계와 지휘통제 소프트웨어를 결합해 새로운 작전 능력을 구현한다. 한국 방산도 무기체계를 장기간 개발해 납품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운용 중에도 성능을 개선할 수 있는 개발·획득 체계를 강화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대기업 중심의 방산 생태계부터 바뀌어야 한다. 기존 체계종합기업의 생산·품질관리 역량은 유지하되, AI와 로봇, 센서 융합, 사이버보안 분야의 기술기업이 국방시장에 진입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방산 실적이 없다는 이유로 참여를 제한하면서 실적을 쌓을 기회마저 주지 않는 구조로는 혁신을 기대하기 어렵다. 단계별 기술검증과 시범사업, 체계종합기업과의 공동개발을 연계하고 성능이 입증된 기술에는 후속 사업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방산기업의 AI 역량을 평가하는 기준도 정교해져야 한다. 단순한 전문인력 수나 인증서 보유 여부가 아니라 실제 무기체계 적용 실적, 데이터 품질, 알고리즘 검증, 사이버보안, 소프트웨어 업데이트와 운용유지 능력을 종합적으로 평가해야 한다. 다만 모든 사업에 동일한 AI 기준을 적용하기보다 무기체계의 특성과 위험 수준에 따라 평가항목을 차등화해야 한다.
수출전략 역시 완제품 중심에서 통합 솔루션 중심으로 확장할 필요가 있다. 무기체계와 함께 지휘통제 소프트웨어, 교육훈련, 예측정비, 사이버보안, 기술지원 등을 결합하면 일회성 수출을 장기적인 사업으로 발전시킬 수 있다. 고객국의 기존 체계와 연동할 수 있는 개방형 아키텍처와 상호운용성도 중요한 경쟁요소다. 정부는 AI·소프트웨어 공통기반을 구축하고 연구개발에서 실증, 시험평가, 후속 구매로 이어지는 경로를 마련해야 한다. 기술기업의 진입 장벽은 합리화하되 안전성과 보안, 품질 기준은 엄격하게 유지해야 한다. 혁신기업이 기술을 개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실제 국방시장에 진입할 수 있어야 산업 생태계가 성장한다.
안두릴의 기업가치가 한국 방산기업의 위기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기존 생산 경쟁력에 새로운 기술 역량을 더해야 한다는 신호다. K-방산의 미래는 얼마나 많은 무기를 생산하느냐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얼마나 빠르게 기술을 개선하고, 다양한 체계를 연결하며, 고객국에 지속적인 전투 역량을 제공하느냐에 달려 있다. 무기를 잘 만드는 나라에서 미래 전장의 시스템을 설계하고 발전시키는 나라로의 전환, 이것이 K-방산의 다음 도약을 위한 과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