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공공정책신문=김유리 기자] 시인 한정찬의 시 "토란(土卵)밭에서"
토란(土卵)밭에서
봄부터 가을까지 비와 이슬과 안개, 바람과 햇빛과 달빛, 별빛과 구름과
천둥과 무지개까지 한 생애의 바깥과 안쪽을 남김없이 받아 안고 흙 속으로
제 몸의 깊이를 밀어 넣으며 토란은 자랐다.
보라,
제 몸 하나 가릴 만큼의 넓은 우산을 펼쳐 빗속에서도 젖지 않는 법이 아니라 젖으면서도 무너지지 않는 법을 잎은 배웠다.
누구에게도 기대지 않고 하늘 쪽으로 뻗어 오른 줄기, 그 푸른 기둥 아래 어둠을 오래 견디며 제 안의 생명을 지켜 온 수많은 둥근 뿌리.
땅속에 묻혀 땅의 어둠을 품고도 알처럼 여문 생명, 토란(土卵).
일흔 고개를 넘고서야 나는 알겠다.
한 생애를 다 내어주고도 내색 한번 없던 사람들, 비바람은 당신들이 맞고 나는 그 그늘에서 자랐다는 것을.
아버지,
어머니,
가을비에 젖은 토란잎마다 당신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불러도 대답 없는 이름들이 빗물처럼 잎맥을 타고 흐른다.
잎도 줄기도 뿌리도 하나 버릴 것 없는 토란처럼,
당신들이 살아 낸 날들 중 어느 하루인들 내게 오지 않은 사랑이었으랴.
가을비는 내리고 토란잎은 다시 물방울을 받는다.
잎 위에 고인 물 한 방울, 끝내 떨어지지 못하고 오래 흔들린다.
한정찬
□ 전직 소방공무원, 안전교육전문인력(행정안전부), 안전교육 강사(산업안전기술공사), 소방안전컨설턴트(한국청소년활동진흥원) 외
□ 월간 소방문학 대표, 한국공무원문학협회 고문, 한국문인협회원, 국제펜한국본부회원, 한국시조시인협회원 외
□ 시집 ‘한 줄기 바람(1988)’외 29권, 한정찬시전집 2권, 한정찬시선집 1권, 소방전문서적 5권, 소방안전칼럼집 Ⅰ권 외
□ 녹조근정훈장, 근정포장, 국무총리상, 농촌문학상, 옥로문학상, 충남문학대상, 충남펜문학상, 소방문화상, 충청남도문화상 외
